아이를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보내던 날, 나는 생각보다 현관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아이의 가방은 이미 어깨에 메워져 있었고, 신발도 다 신겨 놓았는데 막상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이 쉽게 오지 않았다.
이 글은 만 0세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기, 첫 사회생활을 지켜보며 부모로서 느꼈던 불안, 미안함, 죄책감,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배우게 된 믿음에 대한 기록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만 0세. 말도 완전히 트이지 않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울음이 전부였던 시기였다. 그래도 현실적인 이유와 아이에게 필요한 경험이라는 판단 속에서 우리는 어린이집이라는 첫 사회를 선택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요즘은 다 일찍 보내”라는 말과 “아직 너무 아기 아니야?”라는 말이 동시에 들려왔다. 그 사이에서 나는 계속 아이 얼굴을 바라봤다. 이 아이가 과연 이 작은 몸으로 하루를 잘 버틸 수 있을지, 나 없이 몇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하지만 결정과 달리 마음은 쉽게 준비되지 않았다. 가방보다 아이가 더 커 보이던 날, 작은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서던 순간부터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만 0세, 어린이집에 보내는 날의 마음
등원 첫날 아침은 평소보다 훨씬 분주했다. 아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소처럼 웃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시계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아이를 깨웠고, 기저귀를 갈아주면서도 손이 자꾸만 느려졌다. 여벌 옷은 몇 벌이나 필요한지, 기저귀는 혹시 부족하지 않을지, 가방을 닫아놓고도 다시 열어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 아이는 유모차에 앉아 평소와 다르지 않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평온한 얼굴이 오히려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너무 큰 선택을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린이집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낯선 환경에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아이들의 울음소리, 분주한 선생님들의 움직임, 익숙하지 않은 냄새와 소리들. 그제야 아이의 얼굴에 작은 긴장이 스쳤다.
선생님께 아이를 안겨드리는 순간, 아이는 갑자기 내 옷깃을 꼭 붙잡았다. 그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직은 아니었나.’ ‘조금만 더 같이 있을 걸.’ 하지만 이미 아이는 선생님의 품에 안겨 있었고, 나는 애써 미소를 지은 채 뒤돌아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떼는데, 마음 한쪽이 뚝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야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조용했다.
집에 도착해도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집 안은 아이 없이 너무 조용했고, 평소라면 들렸을 장난감 소리도, 옹알이도 없었다. 지금쯤 울고 있지는 않을지, 낯선 품에 안겨 불안해하고 있지는 않을지, 낮잠은 과연 잘 잘 수 있을지. 만 0세 아이의 사회생활은 사실 아이보다 부모에게 더 큰 시험처럼 느껴졌다.
하원 후 아이의 변화
처음 며칠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등원 시간만 되면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매번 미안함과 죄책감을 안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현관 문 너머에서도 들리는 것 같아 몇 번이나 발걸음을 멈췄다.
알림장에 적힌 문장 하나하나가 크게 다가왔다. “오늘은 계속 안아달라고 했어요.” “낯선 환경에 예민한 모습을 보였어요.” 그 문장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아이의 하루가 그려졌다. 울고, 안기고, 지치고, 그러다 잠들었을 아이의 모습.
어느 날은 하원 시간에 교실 문을 열자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하루 종일 참고 있던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는 유난히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조금만 내려놓아도 울음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또다시 흔들렸다. ‘아이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 건 아닐까.’ 하지만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집이 제일 안전한 공간이라서 그래요. 하루를 잘 버티고 와서 부모님께 풀어내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숨이 트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견뎌내고, 집에 와서야 다시 아기가 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주 작은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등원할 때 울음이 줄어들고, 교실 문 앞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다. 선생님 품에 안기며 나를 붙잡던 손도 어느 순간부터는 금세 풀어졌다.
하지만 아이가 적응해 가는 속도와 달리, 부모인 나는 쉽게 놓이지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에도 시계만 보며 시간을 셌고, 알림이 울리면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아이의 적응보다 나의 적응이 훨씬 느렸다.
하원 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더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는 이전보다 훨씬 더 나에게 밀착하려 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신발도 벗기 전에 안기려고 했고, 잠시라도 내려놓으면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에는 혼자 놀던 시간도 있었는데, 이 시기에는 늘 내 품이나 내 옆이 필요해 보였다. 저녁 식사 시간도 달라졌다.
전에는 잘 먹던 아이가 한 숟갈 먹고 울고, 안아주면 또 한 숟갈 먹는 식으로 식사가 이어졌다.
숟가락을 밀어내며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날도 있었고, 결국 안고 서서 먹이는 날도 많아졌다.
‘집에서는 편안해야 하는데’라는 마음과 ‘어린이집이 너무 힘든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계속해서 교차했다.
목욕 시간 역시 쉽지 않았다. 물장난을 좋아하던 아이가 욕실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보이는 날이 있었고,
잠깐의 물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루 종일 낯선 자극 속에 있었던 아이에게 저녁 시간은 또 다른 긴장을 요구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밤잠의 변화는 부모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에는 비교적 쉽게 잠들던 아이가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울음을 터뜨렸고, 잠들었다가도 한두 시간 간격으로 깨서 나를 찾았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를 안고 거실을 서성였다. 작은 몸을 꼭 끌어안고 “괜찮아, 엄마(아빠) 여기 있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아이의 호흡이 조금씩 느려지고 다시 잠에 드는 순간이 되어야 나 역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며칠, 몇 주가 지나면서야 알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가 퇴행이 아니라, 적응의 일부라는 것을.
낮 동안 쌓인 긴장과 불안을 아이만의 방식으로 밤에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저녁 시간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잘 먹지 않아도, 빨리 잠들지 않아도 아이가 하루를 무사히 버텨냈다는 사실 자체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적응기가 부모에게 남긴 것
어린이집에 다닌 지 몇 주가 지나자, 나는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아이의 하루를 내가 모두 알 수 없고, 모두 책임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만 0세 아이에게 사회생활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품에 안겨 울음을 멈추는 것, 다른 아이 옆에 앉아 같은 장난감을 만져보는 것, 낮잠 시간에 낯선 이불 위에서 잠드는 것. 그 사소한 경험들이 아이에게는 충분히 큰 세상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매일 같은 말을 건넸다. “오늘도 잘 다녀왔어.” 아이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내 목소리는 아이에게 다시 돌아왔다는 신호였기를 바랐다.
어린이집 적응기는 아이를 독립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믿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단단했고, 나는 생각보다 불안했지만, 그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씩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지금도 등원길은 쉽지 않다. 여전히 안기는 날도 있고, 울음을 보이는 날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과정이 아이가 세상과 연결되는 연습이라는 것을. 만 0세의 첫 사회생활은 그렇게 아이에게는 새로운 하루를, 부모에게는 한 단계 성장한 마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