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시기만 지나가면 좀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잠깐의 여유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날들 속에서 지금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지금 이렇게 버겁게 보내고 있는 이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가장 깊이 그리워질 장면이 된다는 걸. 이 글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지금의 나를 위한 기록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바쁘다.
잠을 설친 채 시작하는 아침, 끝없이 반복되는 기저귀와 밥, 이유 없는 울음과 떼.
솔직히 말하면, “언제쯤 좀 편해질까”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들이 언젠가는 전부 ‘그리운 기억’이 되지 않을까 하고.
잠깐도 혼자 둘 수 없던 시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그리움
아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이 시기 금방 지나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는 조용한 반발이 일었다.
지금 이 하루가 이렇게 길고 버거운데, 어떻게 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는 말일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의 하루는 온전히 아이의 리듬으로 흘러갔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조절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아이의 잠, 배고픔, 기분에 따라 하루의 일정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잠깐이라도 혼자 두는 일은 늘 불안했다. 화장실에 가는 짧은 시간에도 문을 닫지 못하고 반쯤 열어둔 채 아이의 기척을 살폈다.
물소리 하나에도 울음이 터질까 긴장했고, 서둘러 나와 다시 아이를 안아야 마음이 놓였다. 아이를 안은 채 집안일을 하는 날이 반복됐다. 한 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아이는 내 품에서 잠들었고, 나는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그 무게를 그대로 견뎌야 했다. 그때의 하루는 늘 부족했다.
잠도 부족했고, 체력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도 제대로 한 게 없네”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따라왔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풍경이 달라졌다.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부모의 시야에서 벗어나도 불안해하지 않는 순간들이 생겼다.
그렇게 바라던 ‘여유’가 생겼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아이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오는 느낌이 생각보다 낯설고 허전했다.
그제야 깨닫게 된다. 아이에게 온전히 필요로 받던 그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는 사실을.
하루 종일 불리던 “엄마”, “아빠”라는 말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걸.
그때의 무게와 온기, 내 품에 꼭 안겨 있던 그 순간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장면이었다는 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매일 똑같아 보이던 하루들이 가장 선명하게 남는 이유
육아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아이를 깨우고, 밥을 먹이고 하루를 시작한다.
특별한 날보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 훨씬 많다. 그래서 하루하루는 쉽게 흘러간다.
기억에 남길 만한 사건이 없다고 느껴져 그저 ‘지나간 하루’로 정리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렇게 흘려보냈던 하루들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침마다 졸린 눈으로 안기던 아이의 얼굴, 신발을 신기다 말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떨어뜨리며 까르르 웃던 저녁.
그 장면들은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았어도 마음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 순간들에는 아무런 꾸밈도, 연출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육아가 힘들수록 사람은 현재를 빨리 지나가고 싶어진다.
오늘만 버티면 내일은 조금 나아질 것 같고, 이 시기만 지나가면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아이의 반복되는 요구에도 마음을 온전히 내주기보다 빨리 상황을 끝내고 싶어진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충분하다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날의 고단함보다는
아이의 표정과 목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짜증 냈던 기억은 흐릿해지고, 아이의 손을 잡던 감촉만 또렷이 남는다.
그래서 육아의 시간은 항상 뒤늦게 그 의미를 드러낸다. 살고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지나고 나면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가장 힘들 때, 가장 깊게 사랑받고 있던 시간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몸은 조금씩 편해진다. 잠을 더 자게 되고, 혼자만의 시간도 조금씩 생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의 세계는 점점 넓어진다. 부모보다 친구를 더 찾고,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키워간다.
그 변화는 분명 반갑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부모의 마음 한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서운함이 남는다.
더 이상 늘 안아달라고 하지 않고, 부모의 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 변화 앞에서 부모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가장 깊게 사랑받고 의지받던 시기였다는 것을.
지금 아이는 엄마, 아빠가 세상의 중심인 시간을 살고 있다. 아무 조건 없이 믿고, 있는 그대로 기대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 시기는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훗날 아이가 자라 손을 잡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는 분명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땐 정말 정신없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어.”
그 말 속에는 고생했던 기억보다 함께 버텨냈던 시간, 서로에게 가장 가까웠던 순간들이 훨씬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분명 힘들다.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고,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하지만 언젠가 이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부드러운 마음으로 이 시절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던 감촉, 잠들기 전 품에 안기던 무게,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터지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힘들지만 따뜻한 시간이 언젠가는 가장 그리운 육아의 순간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