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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정보 홍수 속에서 흔들렸던 선택들

by 문후야 2026. 1. 19.

육아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온다.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글을 읽고, 영상을 본 뒤에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는 순간. ‘다들 이렇게 하는데, 나는 왜 이 선택이 불안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시간들. 나 역시 그 시간을 오래 지나왔다.

이 글은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흔들렸던 나의 선택들과, 그 끝에서 겨우 세운 나만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다.

 

육아 정보 홍수 속에서 흔들렸던 선택들
육아 정보 홍수 속에서 흔들렸던 선택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행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검색’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이를 만나기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이렇게 많은 질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질문 하나하나가 이렇게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육아는 사랑과 본능으로 시작될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의 육아는 정보로 시작되었고 나는 그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도움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아이가 왜 우는지 알고 싶었고, 이 울음이 배고픔인지 졸림인지 구분하고 싶었다. 잘 크고 있는지, 혹시 놓치고 있는 신호는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누군가 대신 판단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는 도움을 넘어 부담이 되었고, 선택은 확신이 아니라 불안에서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육아 정보의 홍수 속에서 흔들렸던 나의 수많은 선택들에 대한 기록이다. 비교로 인해 커졌던 불안, 그 불안이 다시 선택을 흔들던 순간들, 그리고 그 끝에서 비로소 나만의 기준을 세우게 되기까지의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솔직하게 적어보려 한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더 불안해졌던 이유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온 첫날 밤부터 나는 검색을 시작했다. 수유 간격, 수유량, 트림 방법, 배앓이 대처법, 신생아 수면 패턴까지. 누군가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수십 개의 글과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정보가 많을수록 든든하다고 느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느낌, 준비된 부모가 되어가는 것 같은 안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같은 주제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들이 동시에 존재했고, 무엇이 맞는지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 방법이 최고입니다’라는 글을 읽고 안심했다가, 바로 다음 글에서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는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은 다시 불안해졌다. 나는 점점 선택을 미루기 시작했고, 선택을 하더라도 늘 확신이 없었다.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나의 상태였다. 나는 늘 불안했고,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가능성과 위험이 보였고, 그만큼 불안은 커졌다. 답을 찾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그 문 뒤에 또 다른 수십 개의 문이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이 시기 아이는 이래야 한다’는 문장은 나를 가장 흔들리게 했다. 평균, 정상, 권장이라는 단어들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아이를 대입해보았다.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으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고,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정보는 참고가 아니라 기준이 되었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나는 늘 부족한 부모처럼 느껴졌다.

정보를 찾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를 직접 바라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아이의 표정보다 글 속의 문장이 더 크게 느껴졌고, 아이의 반응보다 전문가의 말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정보가 나를 돕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비교가 일상이 되었을 때, 선택은 더욱 흔들렸다

육아 정보의 대부분은 비교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같은 개월 수의 아이, 비슷한 환경의 가정, 비슷한 양육 방식.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와 우리의 일상을 그 틀 안에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비교는 어느 순간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습관이 되어 있었다.

SNS를 켜면 또래 아이들의 일상이 펼쳐졌다. 밤잠을 통으로 잔다는 아이, 스스로 숟가락을 들고 먹는 아이, 이미 말문이 트였다는 아이의 모습들. 그 게시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축하하는 마음과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을 느꼈다. ‘우리 아이는 왜 아직 이럴까’, ‘혹시 내가 뭔가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 불안은 곧 선택을 흔들었다. 원래는 아이의 속도에 맞추기로 마음먹었지만, 남들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도 했고, 아이의 반응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채 또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선택의 기준은 점점 아이가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것’이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선택의 결과가 모두 나의 책임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아이가 잘 따라오면 안도했지만, 힘들어 보이거나 거부 반응을 보이면 모든 불안과 자책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굳이 비교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 텐데’라는 후회가 반복되었다.

비교는 나의 기준을 점점 흐리게 만들었다. 무엇이 우리 아이에게 맞는지보다, 무엇이 평균에 가까운지가 더 중요해졌고, 무엇이 우리 가족에게 편안한지보다, 무엇이 남들에게 괜찮아 보이는지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흔들림 끝에서 비로소 세우게 된 나만의 기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흔들리면서 육아를 할 수는 없겠다.’ 정보는 앞으로도 계속 쏟아질 것이고, 비교할 대상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꿔야 할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다. 모든 정보를 다 따라가지 않기로, 하나의 선택을 했다면 최소한의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아이의 반응을 가장 중요한 신호로 삼기로. 누군가의 성공담보다 우리 아이의 표정과 컨디션을 먼저 보기로 마음먹었다.

기준을 세운다고 해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새로운 정보를 보면 마음이 흔들렸고, 비교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흔들림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 내가 지금 불안해서 이 글을 보고 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기준은 거창하지 않았다. 아이가 오늘 조금이라도 편안했는지, 내가 아이를 안아줄 여유가 있었는지, 하루를 마치며 너무 큰 자책 없이 잠들 수 있는지. 그 세 가지 질문이 나의 기준이 되었다.

그 기준을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육아가 ‘정보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평균값이 아니라 한 사람이고, 나는 그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매일 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육아 정보는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흔드는 기준이 아니라, 선택을 도와주는 참고자료로 남아 있다. 비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나만의 기준이 생긴 후로는 다시 중심을 잡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육아 정보의 홍수 속에서 흔들렸던 수많은 선택들은 나를 지치게 했지만, 동시에 나만의 기준을 세우게 한 과정이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완벽한 선택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육아 방식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한 부모로서 선택을 한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지만, 적어도 이제는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나와 아이의 기준으로.